평균수명 80세 시대. 일반적으로 60세 전후에 경제활동을 그만두어도 이후 20년의 삶이 더 이어집니다. 잠을 자거나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쓸 수 있는 시간만 8만 시간인데요. 안타깝게도 이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지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올해 노년층의 적극적인 노후준비 사례를 알리기 위해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했습니다. '에세이'와 '사진' 두 분야에 600여개의 지원작이 몰렸는데요. 미리 준비한 노후설계로 누구보다 멋진 인생을 보내고 있는 이들 중, 에세이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백만기 씨를 만나봤습니다.
은퇴 후에도 출근하는 남자
올해로 61세가 되는 백만기 씨는 8년 전, 53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사무실로 ‘출근’하며 바쁘고 활기찬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는데요. 은퇴한 전문가들이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아카데미를 준비하는 일이나 경제와 정책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모임 등, 만나는 이에 따라 내놓는 명함이 다를 정도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미술활동으로 은퇴 후 삶을 보내고 있는 백만기(61) 씨
무엇보다 그의 시간표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건 취미활동입니다. 한 달에 수 차례씩 방문하는 미술관 관람은 벌써 1,000회를 넘겼습니다. 또한 한 달에 한 번은 미술스터디 모임을 나갑니다. 친구들과 주1회 갖는 독서클럽 모임과 2주에 한번씩 진행하는 밴드 연습은 그의 오랜 취미입니다. 최근에는 수필 강좌에 등록해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옮기는 일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은퇴 이후에 이렇게 많은 취미활동을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생이 즐거운 이유 하나를 더 아는 사람이란 말이 있습니다. 취미생활을 더해 갈수록 인생이 즐거운 이유가 늘어나는 거지요. 또 여러 개의 취미를 가지고 있으면 체력이 떨어지고 여건이 안 되더라도 다른 걸 하면 되니 유익하죠.”
이에 따라 백만기 씨가 은퇴 후 가장 먼저 한 일도 미술관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회사에 매여있어 마음껏 할 수 없던 일들을 본격적으로 하는 것에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한 것이죠. 평소 배우고 싶던 바이올린 역시 꾸준한 연습 끝에 수준급으로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사물놀이와 친구들과 활동 중인 밴드활동도 소중한 취미생활로 인생을 즐겁게 하는 걸로 빼놓을수 없습니다. 이런 취미활동은 바쁘게만 살아온 그에게 인생의 풍성한 재미와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마흔에 시작한 은퇴 준비
백만기 씨는 마흔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하던 1970년대에 금융인이 되어 정신없이 일에 매달려왔던 그가 은퇴를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직장생활 당시의 백만기 씨 모습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에요. 문득 이렇게 일만 하다 인생을 마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더 많이 일하고 더 빨리 출세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정년보다 이른 50세의 나이에 은퇴를 하자고 정했습니다. 10년 간 자연스럽게 생각이 정리되고 준비를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는 53세의 나이에 현직 은퇴를 선언합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오래 생각`하고 준비한 만큼 결단하기는 어렵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내 역시 노후의 삶에 필요한 경제를 걱정했지만 가장인 그의 결정을 따라주었고, 부부는 함께 은퇴 이후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세 가지의 균형’
백만기 씨는 노후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세 가지의 균형’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19세기 폴란드 시인 노드비트가 말한 행복을 위한 조건과 같은 것인데요. 첫째 먹고 살 것, 둘째 삶의 의미를 주는 것, 셋째 목숨을 바칠 정도로 재밌는 것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가 없으면 불안하고 두 가지가 없으면 비참해지는데, 노후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흔히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것이 경제입니다. 부자가 꼭 행복한 건 아니지만 가난하면 역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노후를 위해 수 억의 자산이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저는 목돈을 마련하기보다 생활비를 충당할 현금흐름을 마련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은퇴 시까지 경제활동을 한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현금흐름은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이용해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지요. 불필요한 경비를 줄이고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자산운용 3법칙에 따라 분산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지요.”
다음으로 그는 늘 책을 읽으며 의미 있는 삶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책에는 먼저 인생을 살았던 이들의 교훈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반나절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명상과 독서로 보낸 스코트 니어링 교수와 호스피스 운동을 통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운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박사를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습니다.
백씨가 은퇴 후, 호스피스 병동과 지역 방송국의 DJ, 시각장애인 책 읽어주기 등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한 건 이런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백 씨는 은퇴 후 지역 방송국의 DJ 활동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인생의 재미를 찾기 위해 실용학문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목조건축과 커피, 와인을 시작으로 대학원에서는 미술사를, 아내와 함께 사물놀이도 3년간 배웠습니다. 건강한 체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네 피트니스 센터에서 1주일에 3번 정도 운동을 하거나 주말 등산을 즐깁니다.
백만기 씨가 추천하는 ‘은퇴 설계에 도움이 되는 책 10’
1. 장자 / 장자
2. 인간의 죽음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3 .티베트의 지혜 / 소걀 린포체
4. 나의참회 인생의 길 / 레프 니콜라예비치톨스토이
5. 일하지 않는 즐거움 /어니 J. 젤린스키
6.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 피터 싱어
7. 다시 찾은 마음의 평안 / 안셀름 그륀
8. 조금 소박하게 / 린다 브린 피어스
9. 조화로운 삶 / 헬렌 니어링
10. 현명한 투자자 / 벤저민 그레이엄
자기 답을 찾는 것이 중요
백만기 씨는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꼼꼼하게 노후를 준비했고, 즐겁게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은퇴준비나 노후설계로만 준비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에 대한 답을 고민했다고 말합니다.
후회없는 답을 내놓기 위해 지금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준비하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노후 설계라는 것입니다. 또한 남이 어떻게 했다더라는 말을 믿지말라고 합니다.
“은퇴에 관한 강연을 하러 가면 ‘내가 하는 말을 절대 듣지 마시라’고 합니다. 이건 내가 찾은 답이지, 누구나 따라하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또 은퇴나 노후를 너무 멀게 잡지 마세요. 자신에게 맞는 노후설계의 그림을 가지고, 내일이라도 인생이 끝난다면 나는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준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경제적 걱정 없이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닌 마지막까지 후회 없는 인생을 살도록 준비하는 것! 그것이 백만기 씨가 말하는 ‘멋진 노후설계의 노하우’였습니다.
마지막 순간 돌아볼 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 설계, 마지막 8만 시간을 준비할 때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말이 아닐까요?
대한민국정부 정책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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