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도시에서 제법 큰 요양원을 운영하는 그녀로부터 오랜 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웰다잉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초청이었다. 최근 어르신의 죽음을 많이 겪으면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중 이런 행사를 마련했다고 한다.
요양원 구경하는 것이 즐거움인 나는 해외여행을 갈 때 마다 가능한 시간을 내서 그 지역의 요양 시설을 방문하는 편이다. 오히려 한국에서 요양시설을 둘러보는 것이 쉽지 않다. 다들 외부인을 경계하고 문을 꼭꼭 닫아 둔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 2년 간은 가족들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수 년 전 그녀는 내게 문을 활짝 열어주고 자신의 시설을 맘껏 오가도록 해 주었다. 요양플랫폼을 구상하기도 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하고,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어르신들과 프로그램을 해보기도 했다. 가만 보면,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점심 시간이면 같은 동네에 사는 딸이 “엄마가 오늘은 국수룰 먹고 싶다고 해서, 제가 만들어 왔어요”하며 어르신을 찾는다. 퇴근길에 들른 아들은 “어제는 잘 주무셨대요.”라며 안심한 얼굴로 돌아간다. 처음에 요양원을 혐오시설로 여겨 지역에 요양원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던 주민들도, 요양원 안의 정원을 산책하고 1층 카페에서 차를 마시러 온다.
코로나가 해제되면서 다시 요양원에도 사람 발길이 늘어나려나 보다. 그녀가 준비한 행사에는 직원들, 어르신과 가족들, 지인들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참석했다. 지역주민들도 어르신이고, 어르신을 돌보는 가족들이기에, 이들도 함께 들었으면 해서 초대했단다.
입관의식, 그리고 웰다잉강사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고 각자 웰다잉선언서를 쓰는 식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입관의식에서 지원자가 수의를 입고 관에 누웠다. 50대 후반의 그녀가 준비한 유서를 남편이 낭독하였다.
"사랑하는 남편, 내가 먼저 가서 미안해요. 당신을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어. 나는 밖에 나가면 남편 자랑을 하는 팔불출이었는데. 내가 먼저 가면 남은 당신이 쓸쓸하게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미안해. 내가 없더라도, 계절에 한 번씩 새 옷 사서 입고, 홀아비티 나지 않게 말끔하게 입고 다니세요. 내가 없더라도 우리 동욱이가 있으니 당신이 덜 외롭겠지. 그래서 조금 안심이 돼. 당신은 세상에서 둘도 없이 훌륭한 사람이어,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당신 닮은 아이들을 많이 낳았어야 했는데, 그것이 제일 아쉽네. 그래도 지금 죽기 전에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갈 수 있어 정말 기뻐..."

읽는 남편, 입관한 그녀 모두 눈물이 글썽하다. 유서이자 러브레터를 쓴 그녀는 2년 전에 심장스탠트시술을 하다가 심정지에 빠졌다고 한다. 거의 죽을 뻔 하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녀. 그때 못 했던 이야기를 이번 기회에 할 수 있어 기쁘다고 한다.
또 다른 지원자인 할머니가 치매 초기인 할아버지를 앉혀놓고 입관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남긴 유서를 읽는다.
“제가 먼저 갑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당신은 남은 여생 즐겁게 사시다가 저를 따라오세요. (생략) 내가 당신을 잘 섬기려고 평생 애썼는데 당신 맘에 들었나 모르겠네요. 당신은 마음에 들지 않다고 반찬투정, 살림투정을 했지요. 내가 가고 나면 그런 당신을, 누가 돌볼지 걱정이네요. 누가 당신 마음에 맞게 잘 할 수 있을가요?”
할머니의 투정섞인 유서에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참석자도 준비해 온 유서를 읽었다.

"홀로 남을 남편을 위해서는 걱정과 통 큰 사랑의 말을 남긴다. 당신, 내가 없더라도 항상 깔끔하게 입고 다니세요. 혼자 살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게 되면 함께 사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혼자 쓸쓸하게 남은 여생을 보낼 것을 생각하면 나도 마음이 아파요. 그리고, 딸에게는 뒷 정리를 부탁한다. 내가 숨을 거두면 화장대 둘째 서랍 안쪽에 시신기증서약서가 있다. 거기에 적힌 대로 카톨릭대학교에 전화를 해서 내 몸을 가져가도록 해라. 내 몸이 없더라도 장례식은 꼭 같이 치루면 된단다. 2년 뒤에 병원에서 내 시신을 화장해서 유골로 보내줄 거야. 그것을 납골당에 넣어주면 된단다. 넌 내가 시신기증하는 것을 못마땅해했지. 내가 죽은 뒤, 네가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시신기증서약을 했지만 병원에 연락을 하지 않으면 돼. 하지만, 생명이 다한 내 몸이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공부에 쓰인다면 좋겠구나. 내 유지를 받들어준다면 고맙겠구나."
유서에도, 죽음의 모습에도 다 그 사람의 모습이 담겨있구나. 웰다잉 강사는 ‘사람은 사는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아름다운 죽음은 아름다운 삶의 뒤에 오는 것이리라. 웰다잉 행사가 끝난 뒤 그래도 아직 살 길이 창창한 참석자들이 맛있는 뷔페음식을 먹는 동안 행사 주최자인 그녀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오늘이 제 61번째 생일이랍니다. 자식들이 환갑잔치를 하자고 해서, 요새 무슨 환갑이냐고 뿌리쳤지요. 그러니까 해외여행을 시켜주겠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내가 사람들을 모아 웰다잉이벤트를 하게 해 달라’고 했어요. 여러분 미리 얘기하지 않아 선물 못 가져왔다고 미안해 하지 마세요. 대신 저에게 생일축하 노래 한 번 불러주세요."
그녀의 아들과 딸이 들고 들어온 케익을 자르고 노래를 부른 뒤, 옆에 있던 키 작은 여자가 마이크를 가지고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시누입니다. 우리 올케 생일 축하해 주려고 운전을 3시간 해서 왔어요. 저의 딸이 중요한 시험이 있다는데, 시험은 다음에 보면 된다고 하고 데리고 왔어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우리 올케, 오래 오래 사세요."
그녀는 참석자들을 위해 또 다른 선물을 준비했다. “저는 그 동안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어요. 그래서 치유의 상담을 공부했고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 마음 공부를 권하곤 했지요. 저를 가르쳐 준 상담선생님이 이 자리에 계시는 데요. 사실 상담을 받으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그 돈을 내려고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 또는 지역사회에서 전문 상담이 필요하신 분들은 여기 상담선생님에게 연락하세요.” 2년 전 책을 출판하면서 얻은 수익금 1천2백만 원을 지역주민들의 마음 치료에 쾌척했다.
김숙희(대전 예사랑실버센터) 원장의 환갑잔치를 다녀오니, 삶과 죽음이 순환의 고리로 연결돼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사람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다.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 우송대 사회복지아동학부 초빙교수
미래에셋은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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