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친구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우정보다 애정을, 친구보다 가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유전자 전달에 직접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겨난다. 우정이 삶에 필수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왜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친구를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것일까.
‘우정의 과학’에서 과학 저널리스트 리디아 덴워스는 존 볼비의 애착이론에서 시작해 진화생물학, 행동과학 등의 수많은 연구 결과를 집약해 우정이 인간 존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준다. 저자에 따르면, 우정은 무엇보다 문화 현상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다. 동물에게도 우정 비슷한 행위가 존재하는 것이 증거다. 제브러피시는 친숙한 물고기 냄새를 맡거나 ‘친구’를 보면 두려움이 줄어든다. 원숭이는 서로 털을 골라주고 포옹을 즐기면서 유대를 깊게 한다. 이처럼 우정의 뿌리는 인간 존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안에는 ‘우정 유전자’가 있다. 우리는 무리 속에서 태어나 자라기에 반드시 다른 이의 감정을 읽고 소통하며 협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힘들 때 누구에게 의지하고, 편할 때 누구와 즐길 것인가를 정하는 일, 즉 친구를 사귀는 일은 누구나 익혀야 하는 필수 기술이다.
인간이 이 일을 잘하도록 유전자는 예닐곱 살 아동기에는 강한 우정을 느끼게 재촉하고, 열한두 살 사춘기에는 부모보다 또래 친구에 맞춰 행동하게 한다. 친구는 기쁨과 고통을 함께할 수 있는 또 다른 나를 마련하는 일이다. 비슷한 자극에 친구들은 똑같이 반응하고, 뇌는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일부로 인식한다. 친구가 있으면 세상은 한층 살 만한 곳이 되고, 소속감을 부여하는 우정이 있기에 인류는 협동해 번영할 수 있었다.
우정은 인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정을 잃으면 우리 건강은 위험에 빠지고, 삶의 질은 떨어지며, 마음은 불행해진다. 좋은 인간관계는 스트레스를 줄여 쉽게 위험에 맞서게 하고, 면역을 강화해 좋은 건강과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
사회적 고립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청년 시절을 외롭게 보내면, 혈관계에 문제가 생겨 나중에 고혈압으로 이어진다. 대화하고 포옹할 사람이 없는 사람은 염증이 잘 낫지 않고,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된다. 반면, 사회적 유대는 면역력을 향상한다. 자원봉사에 참여 중인 노인들의 혈액을 채취해 유전자 분석을 한 결과, 유전자 발현에 변화가 일어나 항바이러스 능력이 향상되는 등 건강이 좋아졌다. 따라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단 하나, 타인과 맺는 관계다. 50세에 인간관계 만족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 80세에 가장 건강했다. 친구가 있는 사람은 노화에 따른 고난을 잘 견디고, 인지 능력도 오랫동안 유지한다. 우정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산다.
나이별로 유대의 중심점이 달라진다. 60세 이하에선 결혼 여부가 중요하다. 중년인데 독신인 사람은 결혼한 사람보다 일찍 사망할 위험이 더 크다. 그러나 30, 40대에 바쁘다고 친구를 소홀히 하면 나이 들어 후회한다. 60세가 넘으면 우정이 애정보다 더 의미 있기 때문이다. 노년에는 친구나 친척과 잘 지내는 것이 배우자를 두는 것보다 중요하다. 인간은 나이 들어 연인을 잃어도 우정에 기대어 살 수 있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100세 노인은 예외 없이 친구와 친척에 둘러싸여 있다.
사회적 고립은 노화를 가속한다. 친한 친구, 가족과 매달 6회 이상 만나는 사람은 3회 이하로 어울리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 나이 들면 취미생활이나 봉사활동을 하는 게 좋다. 사회적 연결은 사망률을 50%나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UCLA 의대에서 마련한 제너레이션 엑스체인지 프로그램에 참여해 저소득층 초등학교 학생들을 돌보는 노인들은 콜레스테롤과 혈압 수치가 개선되고, 이동량이 늘면서 체중 또한 감소했다. 물론 관계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 나이 들수록 자신이 정말 아끼는 이들과 일부러 신체 접촉을 늘리는 등 자주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
극히 친밀한 관계는 행복감을 증진하고, 신체 건강도 지켜준다. 상식으로도 잘 알고 있듯, 얕은 관계보다 깊은 우애가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한다. 혈관에는 기름진 게 나쁘지만, 우애는 기름질수록 좋다.
외로움이 사람을 병들어 죽게 한다면, 우정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이고, 감정이 아니라 공중 보건 문제다. 국가나 사회는, 비만이나 대기오염 문제에 관심을 쏟듯, 외로움 문제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공동체 결속을 높이고 유대의 기회를 늘리면, 사람들은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다. 아울러 개인도 우정에 투자하고 양질의 관계를 구축하려 애써야 한다. 나이 들수록 친구나 가족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면서 극진한 우애를 나누는 게 좋다.
우정은 좋은 삶의 필수 요소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옳은 말이다. 우정은 고난을 견디게 하고, 병을 물리치고, 죽음도 무찌르니까 말이다. 우정의 과학 서평
장은수 출판평론가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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