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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여행후기

백만기 2021. 2. 17. 09:05

 

동숭동에 있는 북카페 타셴에 들렸다. 인생학교 문화답사반 학생들과 혜화동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구경하고 샌드위치도 먹을 겸, 미술서적도 구경할 겸 오랫 만에 간 것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니 20세기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비싸다는 '헬무트 뉴튼'의 사진책이 입구에서 우리를 반긴다. 한정판으로 10,000부만 찍었다고 하는데 책 값이 우리 돈으로 2천만원이다.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부피가 커서 누가 사겠냐만 어쨌든 이 집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는 책이다.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3층 서점으로 향하려는데 종업원이 3층은 폐쇄되었고 서점은 2층으로 내려 왔다고 한다. 전에는 2층에 음악감상실이 있었고 파스타, 스테이크 등 양식과 와인을 팔았는데 경영난 때문인지 문을 닫고 그곳을 서점으로 꾸몄나보다. 그런데 2층으로 올라가니 서점도 문이 잠겨 있었다. 문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를 찾아 우리가 서점에 왔다고 하니 그제서야 문을 열어주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 오른 쪽에는 전에 음악감상실로 사용했던 공간에 여전히 매킨토시 앰프와 알텍 스피커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래 전에는 이곳에서 연주도 하고 제법 흥겨웠는데 소리 없이 텅빈 공간을 지키는 과거의 명기들을 보니 마음이 허전했다. 예전보다 먹고살기는 좋아졌는지 몰라도 풍류를 즐기는 여유는 점점 없어지는 듯하다.

 

타셴은 단일 서점으로는 가장 많은 미술.사진서적을 보유하고 있는 서점이다. 수북히 쌓여있는 미술.사진전문서적을 보고 학생들의 눈이 동그래지며 탄성을 올렸다. "여기 데이비드 호크니 책도 있네?", "저기 우리가 얼마 전에 갔던 미메시스 뮤지엄을 표지로 한 알바로 시자의 책도 있다."

 

과연 그랬다.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을 책으로 출판했는데 표지에 파주에 있는 미메시스 뮤지엄이 있었다. 그의 최근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작품 내용이 좋았기 때문이리라. 학생들이 미술서적을 구경하고 있을 때 나는 서가를 한번 둘러 보았다. 그러다가 나의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제목이 '신동헌의 클래식이야기'란 책이다.

 

신동헌 선생님은 내가 직장에 사표를 내고 분당에 고전음악카페를 오픈했을 때 초청하여 실내악 연주회에 앞서 음악해설을 하셨던 분이다. 그때만 해도 정정하셔서 전철을 타고 이매역에 오시면 4번출구에서 내가 기다렸다가 차로 모셔오곤 했다.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항상 스케치북을 갖고 다니며 전철 안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음악회를 할 때면 연주자의 모습을 스케치하여 음악회가 끝나면 연주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코주부 김용환 선생님의 제자로 고바우영감을 그렸던 김성환 화백과도 가까운 사이다.

 

선생님은 아우 신동우 화백이 소년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풍운아 홍길동'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국 최초로 극장용 만화영화 '홍길동'을 제작한 감독이기도 하다. 당시 영화제작비의 10배에 해당하는 5,400만원을 들여 영화를 제작하였는데 개봉 나흘만에 관객 10만명을 돌파하여 흥행에도 성공했다. 나이 든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과거 진로 소주의 CF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림만 잘 그린 것도 아니다. 선생님은 서울대 건축과 재학 중 의대생과 공대생으로 이루어진 사이언티스트 오케스트라에서 제2바이올린을 맡았는데 본인의 연주를 녹음해서 들어보고는 실망해서 그만 두었다고 한다. 나도 바이올린을 2년 배우다 그만 두었는데 선생님도 그런 과거가 있었다. 그후에는 연주보다 클래식음악을 보급하는데 힘썼다. 현장에서 음악을 해설하고 몇권의 클래식해설집을 펴냈다.

 

내가 그분을 모시고 고전음악카페를 운영할 때 '재미있는 음악사이야기'를 펴냈는데 직접 사인을 하여 내게 주셨다. 그이전 1995년에 '음악가를 알면 클래식이 들린다'란 책도 출판했는데 그책은 오래 전 내가 직장에서 고전음악동호회를 이끌 때 구입하여 보관 중이다. 만화를 잘 그리니까 책 여기저기에 관련 내용을 만화로 그려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고전음악카페에서 실내악 연주회를 할 때 연주가 끝나면 연주자와 관객이 참석하는 조그만 와인파티를 벌였다. 선생님이 와인을 한잔하고 기분이 좋아지자 재미나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했다. 어느 곳을 방문했을 때 잘못해서 여자화장실을 들어갔다고 한다. 볼일을 보고 있는데 여자 한 분이 들어와서 깜짝 놀라며 "여기는 여성용이어요."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선생님이 자신의 가운데를 가르키며 "이것도 여성용입니다."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모두가 긴가민가하며 웃었다.

 

선생님은 나를 백관장이라고 불렀다. 고전음악카페를 갤러리로도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내게 미술계의 파벌에 대해 이야기하며 백관장은 절대 어느 편에도 들지 말라며 충고를 했다. 아마 누군가 선생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나 보다. 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2004년과 2005년 2년동안 고전음악카페를 운영했다. 2005년 성남아트센터가 들어서며 이제 시민들이 그곳을 운영하면 되겠다는 생각에서 카페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 날 어느 연주자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그래도 이런 공간이 있어 좋았어요!"

 

그후에도 신동헌 선생님과는 가끔 만났다. 명동에 있는 맥주집에서 만나기도 하고 선생님이 후원회장으로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우예주 양의 연주회 등이 있을 때 뵈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며 차츰 소식이 뜸해졌다. 어느 날 선생님의 소식을 알고 있는 분을 만났는데 아불싸, 선생님이 치매에 들어 이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이제 그분 나이 아흔이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타셴에서 선생님의 책 '신동헌의 클래식이야기' 출판년도를 보니 2007년에 초판을 발행했다. 내가 고전음악카페 문을 닫고 나서 2년 후에 책을 내신 것이다. 책에는 2년 동안 분당에 오셔서 클래식음악을 했던 시기의 에피소드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상념에 젖어 있을 때 인생학교 학생들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게 다가 오더니 이제 그만 가자고 한다. 우리 때문에 문을 열고 기다리는 직원에게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직원이 손 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여기 책을 사는데 왜 미안해요, 오히려 좋지! 하며 나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다음 일정 때문에 마냥 머무를 수도 없는 일이다.

 

학생들이 모두 한두 권씩 책을 샀다. 나도 신동헌 화백의 책을 한권 사서 가방에 넣었다. 학생들에게 '우리 시민들이 이곳에서 책을 자주 사지 않으면 이곳마저 없어질지도 몰라요.'하며 으름짱을 놓았다. 정말 그랬다. 우렁차게 소리를 내야할 명기 알텍 스피커가 그러하지 못하고 그냥 한쪽 공간에 방치되어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학생들과 앞으로 자주 찾아오자며 다짐을 하고 서점문을 나섰다. 나로서는 신동헌 화백과의 추억을 떠올렸던 뜻 깊은 날이기도 했다.

 

사진 신동헌 선생님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