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나이 든 스님이 임종을 앞두고 고민이 하나 있다. 다른 제자들은 다 깨달음을 얻고 출가했는데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우둔한 제자가 걱정이었다. 제자 역시 그것이 죄송스러웠다.
그의 심성은 착했다. 항상 스님의 옆에서 어려운 일을 마다 않고 했다. 그러니 스님의 마음이 더욱 아팠다. 이제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어느 날 스님이 제자를 불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내가 주는 이 쌀자루를 안고 가서 저 건너 편 산의 정상에 내려 놓고 오너라. 그런데 중간에 한번이라도 쉬면 안 된다."
제자는 뜬금없는 스님의 심부름이 이상하게 여겨졌으나 예나 다름없이 묵묵히 스님의 지시에 따랐다. 자루를 움켜쥐고 절문을 나섰다. 처음에는 가볍게 느껴졌던 자루가 산을 올라갈수록 무거워졌다. 힘이 장사였던 그도 한번쯤은 쉬고 싶었으나 스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산의 중턱에 다다러서는 땀이 비오듯 그의 옷을 적셨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으나 자루를 내려 놓지는 않았다. 그렇게 산을 올라 거의 탈진하여 쓰러질 지경이 되어서 산의 정상에 가까스로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자루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숨을 깊이 내쉬었다.
바로 그때였다. 무언가의 깨달음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아, 바로 이거였구나! 놓으면 되는 것을. 그저 내려 놓으면 되는 것을.'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스승의 가르침을 이제 깨우쳤다. 그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는 신이 나서 팔을 휘두르며 산을 뛰어 내려왔다. 절문이 가까워졌다. 멀리 스님이 보였다.
그는 스님을 향해서 외쳤다.
"스님, 알았습니다. 이제 깨달았습니다!"
제자가 기쁜 얼굴로 뛰어오는 모습을 보고 스님도 그제서야 미소를 지었다. 스님 또한 이제 짐 하나를 벗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오래 전 어느 책에서 본 글이다. 우둔한 제자가 깨달음을 얻는 장면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찌보면 나 역시 머리가 우둔한 제자와 다름이 없다. 그저 놓으면 되는 것을... 언제나 내려 놓을 수 있을지?
백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