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시대 최고 재테크
고교 동기 십여 명이 함께하는 단톡이 있다. 요즘은 부동산 얘기가 한창이다. 시골 출신이지만 서울로 대학을 와서 취직하고 안정된 직장을 30년 정도 다닌 친구들이다. 힘들게 돈을 모아 아파트 1채씩은 갖고 있는데, 이게 요즘은 웬만하면 20억원 안팎이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시골에 올라와 20억 정도 갖게 됐으니 우리도 성공한 거야”라며 만족해하는 글을 올렸다. 다들 흐뭇해하던 분위기는 다른 친구의 짤막한 글에 금세 싸늘해졌다. “너도나도 다 20억인데…그게 무슨 부자냐.”
돈값이 영 말이 아니다. 서울에서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성실히 다닌 50대 가장이 가진 20억원은 그리 커 보이질 않는다. 이유는 뻔하다. 돈이 워낙 많이 풀렸다.
올 9월 기준 광의 통화량(M2)은 3115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9.2% 늘어났다. 8월과 비교해도 한 달 사이에만 14조2000억원이 증가했다. 4월 이후 M2 증가율이 매달 9%를 넘는다. 코로나19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급격히 돈을 풀어낸 결과다. 2010년 9월 통화량 1659조4000억원이었으니 10년 만에 2배 가까이(87.7%) 급증한 셈이다.
이처럼 돈이 많이 풀리니 자산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코스피는 연일 사상 최고치로 치솟는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한국 증시 시가총액은 2010년 11월 말 1153조원에서 올 11월 말 2129조원으로 84.6% 증가했다. 공교롭게 통화량 증가율과 거의 유사하다. 아파트값도 고공행진이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 주요 아파트는 10년 전과 비교해 2~3배 오른 곳이 수두룩하다.
돈값이 떨어지니 자산을 매입해두려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앞으로도 유동성 공급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한창이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23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시사했다. 자산으로의 유동성 쏠림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자산가치 상승에 합류하지 못한 경우 상대적 박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뒤늦게 자산 매입에 나서려니 상투를 잡을 것 같아 불안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또 다른 길이 있다. 자산 종류에 자신도 포함시키면 된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력은 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자산이다.
월 3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을 가정해보자. 화폐가치 하락으로 이 직장인 몸값도 높아졌다. 현재는 12억원쯤 된다. 임대수익률 연 3%로 가정해 300만원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상가 건물의 가치다. 과거 임대수익률이 연 6%였던 시절과 비교하면 유동성 확대와 금리 인하 덕분에 몸값이 2배나 뛰었다.
주식이나 아파트에서 벌지 못했다면 자신의 가치를 높여 화폐가치 하락 시대에 대응하는 것이다. 자연상승분 이상의 초과 수익을 거두려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발품을 팔아 교육, 교통 등 입지 좋은 아파트를 찾거나, 저평가된 종목을 선택하려 많은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계발을 위한 투자를 통해 좀 더 많은 봉급을 받는 직장이나 직업을 선택하든지, 그게 자신이 없다면 현 직장에 충성해서 보다 오랜 기간 월급을 받아야 한다. 저금리 시대 최고 재테크 중 하나는 자신에 대한 투자다.
임상균 주간국장
매경이코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