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전 직장의 상사였던 K 선생님과 오랜만에 만났다. K 선생님은 가진 것도 많지만, 무엇보다 70대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그런 분이다. 그래서 난 막연히 이분이 아주 행복한 얼굴로 나이 들어가고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기대와는 아주 달랐다. 무엇보다 표정이 밝지 않았다. 자주 얼굴을 찡그리면서 이런저런 불만을 쏟아냈는데, 그 내용을 들어보면 건강 문제도 있었지만 주로 사람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었다. 돈 뺏어갈 궁리만 하는 자식들도 못마땅하고, 자식들을 그렇게 키운 아내도 꼴 보기 싫다고 했다.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것 많고 일도 오래 하는 사람이라고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니구나’, ‘이 세상에 모든 게 좋을 수는 없는가 보다’라는 생각도 들고, 또 ‘얼마나 힘들면 오랜만에 만난 나한테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실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외로움이나 고독감의 문제는 객관적인 조건과는 큰 상관이 없다는 점도 새삼 실감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이분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고역’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니 이분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친구’의 부재였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난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이야기는 사적인 자리에서 친구들하고나 할 수 있는 이야긴데… 아, 그러고 보니 이분한테는 친구가 없는가 보다. 주변에 사람은 많은데 정작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구나. 그래서 상관도 없는 나한테까지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하소연을 하시는구나. 아, 이래서 나이 들수록 친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거구나.’
내가 만난 은퇴자 중에도 이런 사람이 꽤 있다. 휴대폰 속의 전화번호부에 수백 명의 이름이 저장돼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거의 없는 경우 말이다. 직장생활 할 때 맺은 공적 관계망은 크고 화려한데 정작 사생활 이야기를 할 사람은 없고, 주변을 둘러보면 심리적 거리가 먼 사람만 가득한 사람들이다.
특히 여자보다는 남자들 중에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은 평소에도 친구끼리 자신의 내밀한 감정이나 가정사에 대해선 잘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힘든 얘기, 아픈 얘기도 솔직히 나누고 도와달라는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친구는 나의 ‘거울’이자 ‘심리적 우산’
가장 안쓰러운 경우는 직장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이다. “선배님, 놀러 오세요. 점심이나 같이 하시죠”라는 후배들의 인사말을 진심으로 알아듣고 진짜 놀러 가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바쁜 후배 들을 불러내서 점심 당번을 서게 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친구는 가족만큼, 때로는 가족보다 더 중요해진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좋아하는 노래가 비슷한 친구들에게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친구끼리는 오랜만에 만나도 금방 말이 통하고, 친구를 만나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금세 풀린다. 그래서 놀이나 나들이를 할 때도 친구랑 함께하면 더 즐거워진다. 격변의 시대를 함께 건너온 사람들만이 가지는 끈끈한 동지의식도 있다. 그래서 친구들끼리는 나이 드니까 서글프다는 얘기, 여기저기 아프다는 얘기도 솔직히 털어놓고 위로도 주고받는다. 때로는 유용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그뿐인가. 친구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며 ‘심리적 우산’이다. 생각해보라.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진 친구관계가 없다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 기를 해줄 사람은 누구일까? 친구라는 심리적 우산이 없다면 요즘처럼 급변하고 비바람 몰아치는 험한 세상을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친구관계라는 우산 속에서 우리는 몸을 숨기기도 하고, 초라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앞으로 1 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가족이 아닌 친구와 함께 한집에서 혹은 가까이에서 사는 경우도 점점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던바의 수 “친한 친구 5명, 좋은 친구 15명”
그래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진짜 친구’를 가지고 있는가? 진짜 친구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다. 가정사나 내밀한 이야기도 공유할 수 있고, 아픈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친구다. 이런 친구가 5명쯤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 3명만 있어도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까. 사실 ‘몇 명의 친구가 있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정답은 없다. 상황에 따라, 취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친구를 어떤 사람으로 정의하는가 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는 ‘던바의 수 (Dunbar’s number)’라는 재미있는 이론을 발표했다. 인간의 두뇌 용량을 감안할 때 가장 친한 친구는 5명, 좋은 친구는 15명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다양한 상황을 감안한다 해도 “한 사람이 제대로 사귈 수 있는 친구의 숫자는 최대 150명”이라고 했다. 인간은 수많은 사람과 모두 친할 수 없다는 것. 많아도 허무한 관계보다는 적더라도 ‘찐한’ 관계가 더 의미 있을 것이다. 만일 진짜 친구가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친구 만드는 일에 힘을 기울여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이왕이면 나이도, 생각도 다른 친구를 사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친구’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동갑이거나 한두 살 차이 나는 사람을 떠올 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과도 쉽게 친구가 된다. 10여 년 차이 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베스트 프렌드’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물론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의 장점은 있다. 편안하고, 동질감도 느낄 수 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끼거나 자존심 상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우선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의 화제는 너무 뻔하다. 쓸데없는 정보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나이 들수록 노화와 쇠퇴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많아지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활기차고 의욕적이던 만남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기운 없고, 우울하고, 누군가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슬퍼지는 만남으로 변하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서로 위로하고 아픔을 나누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젊은 사람들과 만날 때 느끼는 활기와 도전 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점점 더 어렵다.
그래서 친구는 다양할수록 좋다. 때로는 젊은이들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듣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또 때로는 열 살쯤 연상인 친구를 만나 미래에 다가올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저 나이에도 저렇게 열심히 살 수 있구나’ 하며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도 서양 사람들처럼 사람을 ‘나이’로 구분하기보다는 흥미와 관심에 따라 ‘종적’으로 구분하면서 세대를 초월해 서로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 나와 다른 생각과 가치, 생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친구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정보를 주고,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당신을 안내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와 다른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그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출신 학교나 직업 경력을 불문하고, 책 읽기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기타 치기를 즐기는 사람들끼리, 특정 스포츠를 연마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만나 친구가 되는 것이다. 흥미와 관심에 따라 교류하고 유대를 가짐으로써 당신의 인생은 훨씬 풍부해질 것이다.
대단하다 친구야, 응원할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일 말이 있다. 친구들 간에도 지켜야 할 선과 예의가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친구들 만날 때 씁쓸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라고 말하던 은퇴자 P 씨의 하소연을 들으며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P 씨가 말했다.
“제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이 도와주기는커녕 기를 꺾는 말만 해요. 얼마 전에도 내가 산악자전거로 일본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야야, 이 나이에 왜 그렇게 힘들게 살려고 그래? 무리하지 말고 그냥 살던 대로 살아. 국내나 다니지 무슨 외국까지 간다고. 젊은 척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해.”
P 씨는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싫어진다고, 돈 한 푼 대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기를 죽이려는 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들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변화나 새로운 삶을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방해하려고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하고 도와주는 친구도 좋지만,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응원해주는 친구는 더 고맙다. 이제부터 뭔가를 시작하려는 친구에게 큰소리로 이렇게 격려해주자. “와! 대단하다. 친구야. 네 용기가 부럽다. 응원할게!”
한혜경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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